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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상속으로

송중기, 유대위 뺨치는 속정 가득한 의리남이지 말입니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사람은 벼랑 끝에 서봐야 비로소 맨 얼굴과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 사람의 인품과 신뢰 자산이 어땠는지는 경사 보다 조사에서 선명하게 확인되는 것 또한 진리다. 건강이나 재산, 명함을 잃고 세상에서 낙오됐을 때 과연 주위에 몇 명이 내 손을 잡아줄지 떠올려 본다면 아마 옆과 뒤를 더 살뜰하게 챙기게 될지 모른다.

 

우연히 송중기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 건 ‘늑대소년’이란 영화가 개봉하던 2012년 무렵이었다. 서러운 무명과 신인 시절을 거쳐 차곡차곡 드라마와 영화로 인지도를 쌓고 꽃봉오리가 피던 시기였다. 당시 국내 최대 기획사 싸이더스HQ 소속이던 그는 박보영과 호흡을 맞춘 ‘늑대소년’으로 여심을 공략하며 제대로 포텐을 터뜨렸다.

 

​보통 눈물 젖은 빵을 장복한 신인일수록, 또는 무명 기간이 길었던 야망있는 새싹일수록 스타가 되면 보상심리를 주체하지 못 한다. 가장 먼저 전화번호를 바꾸고 자질구레한 인간관계부터 1차 정리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 스타로부터 ‘이 번호로 저장해주세요’라는 단체문자를 전송받고 감격하게 된다.

 

보상심리 발동 2단계는 바로 소속사의 라인 갈아타기다. 어제까지 포장마차에서 계란탕에 소주를 마시던 팀장, 실장 매니저는 더 이상 급이 안 맞는 존재가 되고 대표나 적어도 이사와 핫라인을 개통해 모든 걸 상의한다. 그러나 이걸 꼭 연기자의 얄팍함이라 몰아붙이기 어려운 건 회사 역시 이런 관계맺음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대화 무대도 포장마차 대신 한강이 보이는 가라오케나 텐프로 룸살롱으로 바뀐다. ‘지금까진 형이 너한테 별로 신경을 못 썼어. 앞으로 잘해보자’ ‘네 대표님. 저도 솔직히 회사가 야속할 때가 많았지만 어쩌겠어요. 앞으로 자주 봬요’ ‘근데 대표님이 뭐니. 이제 형이라고 불러’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회사는 1년에 30~40억의 매출을 올려줄 스타의 사기진작을 위해 수익 배분 비율도 쿨하게 고쳐주는 아량을 베푼다.

스타는 카니발에서 밴으로 차가 바뀌고 이제 더 이상 차에서 식은 김밥이나 햄버거를 먹지 않아도 된다. 이젠 청담동 카페에서 궁중떡볶이를 시켜먹어도 누가 감히 토를 달지 못한다. 매니저, 스타일리스트도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내가 잠도 못 자면서 회사에 벌어다주는 돈이 얼만데.

그런데 송중기는 달랐다. 당시 싸이더스HQ에서 그와 재계약을 위해 제시한 금액과 조건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업계 최고 수준에 가까웠다. 많은 이들은 송중기가 여느 배우들처럼 재계약하고 궁중떡볶이를 실컷 먹으며 텐프로를 들락거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모두의 예상을 깼다.

 

​못 들어가서 안달인 국내 최대 기획사와의 재계약 대신 그는 5년 넘도록 자신과 동고동락한 실장 매니저와 회사를 차리기로 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실장 형에게 회사를 차리게 도와주고 자신이 그 밑으로 전속 계약하는 형식이었다. 그 형 매니저는 송중기가 데뷔 영화 ‘쌍화점’에서 꽃미남 기쁨조 건룡위로 나오던 시절부터 오디션 정보를 물어오고 운전은 물론 낙방할 때마다 포장마차에서 늘 소주를 사주던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후배들이 먼저 승진했을 때도 그 형은 불평불만 없이 최지우, 송중기 차를 운전하며 악바리처럼 버텼다. 그렇게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을 이번엔 송중기가 보듬어주고 그를 위해 독립까지 결심한 것이다. 송중기는 입대 전 ‘형, 나 없더라도 가오 죽으면 안 된다’며 수입차까지 선물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 유시진 대위가 픽션 속 가공의 인물로만 여겨지지 않는 건 실제 송중기의 품성과 상당 부분 겹쳐지기 때문이다. 강자와 손잡고 얼마든지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지만 자신이 힘들고 고달플 때 곁을 지켜준 사람과 국도를 타겠다고 결심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나갈 때 꽃등심 먹은 사람보다 힘들 때 떡볶이 먹은 이가 더 오래가는 법인데 이해관계 첨예한 연예계에도 송중기 같은 신선한 역발상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 미소짓게 된다.(사진=송중기/ 뉴스엔DB)

 


김범석 전문기자
[기사/사진출처_뉴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