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는 무궁무진한 매력이 있습니다.”

 

류인균(52)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의 말이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최고 대학으로 평가받는 서울대 의대 교수였으며,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신경정신과 의사였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서울의대 교수를 내려놓고 이화여대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류 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됐다. 그는 뇌의 신비함과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사실 그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국내에서 손꼽히는 뇌 과학자였다. 뇌기능 연구로 2007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약물의존연구소가 수여하는 국제 저명과학자상을 받았으며, 앞서 2000년에는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뇌 연구를 본격화하기 위해 2013년 이화여대에 뇌융합과학연구원이 설립되자 초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에서 만나자마자 그는 한 시간 정도 연구원 곳곳을 소개해줬다. 연구원에 갖춰놓은 각종 설비, 뇌 검사 장비, 연구성과 등을 꼼꼼히 설명했다. 국내에 흔치 않은 연구용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장치를 소개할 때와 입구에 붙어있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지원 연구소’를 설명할 때는 일종의 뿌듯함도 전해졌다. 연구원 소개를 마친 뒤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제가 공부할 때 자연대의 뇌과학 과정을 배웠습니다. 제 전공이 신경정신과이니 자연스럽게 임상에서 뇌 장애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죠. 기본적인 뇌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에서 이화여대로 옮긴 이유가 힘들어서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미국에선 의사를 한 다음에 연구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없죠. 그런데 우리 연구원에는 의사를 하다가 연구하겠다고 옮긴 분이 다섯 분이나 됩니다. 저처럼 신경정신과 교수, 재활의학과 교수 등이 환자를 진료하다가 넘어왔습니다. 월급이 적어지면서도 뇌 연구의 매력에 빠져 관심을 가지고 오시는 거죠.”

 

뇌 연구의 어떠한 부문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그는 뇌 연구가 다른 연구와 달리 어렵다고 했다. 다른 장기는 죽은 조직을 통해서나 동물 등을 통해서 연구할 수 있지만 인간의 뇌는 복잡해 대체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선진국은 이미 뇌 과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는 심리학과를 없애고 새로 팀을 만들었습니다. 뇌 신경생물학 하는 사람, 인간에 관심 있는 사람 등을 모아서 팀을 구성했어요. 이곳의 뇌 인지학과 교수가 세계를 선도합니다. 이미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볼 때 어떤 색에 반응하는지, 남자는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되는지, 사람이 자기가 인식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본능적인 기분에 대해 살펴보는 겁니다. 또 사람은 커피와 빵 굽는 향을 맡으면 계약서에 더 잘 서명하는데 왜 그런지. 우리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단순히 세포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고위 인지 기능과 고위 감정을 해독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가 하는 거니까요. 인간의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연구해 사회에 기여 하는 게 목적입니다.”

 

류 원장은 뇌 연구 중에 사람의 뇌가 스트레스를 받은 뒤에 뇌 기능이 회복되는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 피해자 등 대형 재난 피해자와 북한이탈주민, 소방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연구하면서 그들이 받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어떻게 회복되는지 등을 연구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일종의 불안장애입니다. 제가 진료할 때 불안장애 클리닉을 했습니다. 신경정신과에서 원인이 가장 뚜렷하게 밝혀진 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죠. 불안에는 심리적·생물학적 원인이 있지만, 심리적 외상은 원인과 결과가 너무 뚜렷합니다. 즉, 실험적인 상황이랑 비슷해 연구로 밝히기가 용이합니다. 사람이 강력한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불안장애를 겪게 되지만 사람마다 이 장애를 회복하는 속도가 다릅니다. 스트레스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를 분석한 결과 머리 앞부분인 뇌의 ‘배외측 전전두엽’이 두꺼운 사람일수록 스트레스에서 더 빨리 회복했습니다. 평소에 뇌 전두엽이 두껍지 않아도 두껍게 훈련하는 인지 훈련을 하면 좋아집니다. 스트레스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범죄 피해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40명 중 1명이 범죄 피해자라고 하는데, 며칠 동안 잠을 못 자잖아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있을 수 있죠. 이때의 뇌의 반응을 연구하는 겁니다.”

 

연구결과 흥미로운 점은 뇌도 훈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뇌의 매력 중 하나라고 말한다.

“공부를 두 달만 하면 뇌 두께가 바뀝니다. 공부를 안 하면 또 없어지고요.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GRE)을 위해 단어를 많이 외우게 되면 진짜 뇌가 바뀝니다. 뇌에서 탐색하는 부분이 두꺼워졌습니다. 뇌가 두꺼워진다는 것은 그 부분을 지원해주는 세포들이 많아지고 서로 연결되는 것을 말해주죠. 즉 뇌 시냅스가 커지는 거죠. 공부를 많이 하면 뇌가 커진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터질 만큼 커지지는 않으니 공부 많이 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략 1∼2% 커지고 두꺼워집니다.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어진다고 하는데 50대 60대에도 뇌를 계속 쓰면 굳지 않습니다. 물론 새로운 변화가 없으면 뇌에 변화가 생기질 않습니다. 병에 걸려서 퇴화하지 않는 한 뇌는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조직입니다.”

 

류 원장은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수원 토막살인 사건 범죄자 박춘풍의 뇌를 조사해 사이코패스로 볼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닌 공사장에서 떨어져 뇌를 다쳤고,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뇌인지 과학과 사회와는 연결지점이 많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충동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뇌 문제입니다. 박춘풍의 경우에는 정신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뇌 영상을 분석하게 된 계기입니다.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형해주는 것처럼 뇌의 구조와 기능을 고려하는 게 인권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양형 기준에 반영이 안 됐는데, 앞으로는 반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머리를 다친 사람들이 제법 많거든요. 물론 범죄는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얄미운 사이코패스와, 뇌 손상으로 조금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흑백 옥석이 가려지지 않고 똑같이 취급되는 것은 인권 측면에서도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대가 발전해서 MRI를 찍고 검사를 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충동을 자제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뇌 과학자에게 ‘알파고’에 대한 질문을 빼놓을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뛰어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대해 류 원장은 아직은 먼 미래이지만 실현 가능한 현실이라고 했다.

 

“속도로는 옛날부터 인공지능이 사람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라는 표현과 인간지능은 다릅니다. 인공은 인간이 하는 행동, 운전, 바둑, 체스, 인간이 하는 특정한 행동을 잘 파악해서 오류 없이 빨리하게 만드는 거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인간의 행동은 오류가 많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이것을 분석해 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파고의 바둑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습니다. 즉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완벽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사람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도 예측이 어렵습니다. 정치적, 학력, 경력도 평가대상에 오를 수 있지만, 외모가 주는 인상은 정의가 어렵습니다. 이 사람은 사기를 칠 거 같고 피해를 줄 거 같은 본능적인 부분도 다 더해지기 마련이거든요. 인공지능이 아직 이런 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가 알려지게 되면 이야기가 다를 겁니다. 인간 뇌의 중요한 원리들이 밝혀지고, 컴퓨터가 관여하게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시대가 되면 관련 연구도 제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웬만한 사람보다 더 잘할 가능성이 더 많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예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아직 먼 이야기입니다.”

 

류 원장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몇 차례 강조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 2인자가 잘 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보통 유명한 학자가 있으면, 그 밑에서 배운 사람이 그 명성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없다는 거죠. 1인자에게 너무 의지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 뒤에 오는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출어람이 제 좌우명입니다. 이화여대에서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시설과 연구진을 한데 모았습니다. 지금은 원장인 제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더 훌륭한 사람들이 뇌과학 연구를 잘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기사출처_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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