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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감독으론 14년만에 첫 ‘벌컨’ 수상… 얼떨떨해요”

 

한국인 최초 칸영화제 기술부문 賞 … ‘아가씨’ 류성희 감독

 

“칸영화제에서 미술 부문 상을 받은 작품들을 보며 미술감독의 꿈을 키웠어요. 제가 이 상을 받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한국인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벌컨상(Vulcan Award of The Technical Artist)을 수상한 영화 ‘아가씨’의 류성희 미술감독은 2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이라는 걸출한 감독을 만나 꿈을 이루게 됐다”며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칸영화제 조직위원회는 22일(현지시간) 제69회 영화제 폐막 후 홈페이지를 통해 류 감독을 벌컨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올해 칸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본상 수상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류 감독이 이 상을 받으며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지난 2003년 제정된 벌컨상은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 중 미술, 음향, 촬영, 편집, 시각효과 등에서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이룬 아티스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며 대부분 촬영이나 음향 부문에 주는 이 상을 미술감독이 받은 것도 최초다. 류 감독은 “이 상의 의미를 알고 더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2000년 ‘화양연화’로 기술상(벌컨상의 전신)을 받은 장수핑(張叔平·왕자웨이 감독의 미술감독)을 보며 ‘저런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선행조건(칸영화제 진출)을 충족시켜주신 박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시대 분위기와 캐릭터의 특징을 잘 살린 디자인으로 풀어냈다. 지난 14일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된 후 아름다운 영상미와 미술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제 데일리(소식지)를 만든 버라이어티는 리뷰를 통해 “류성희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저택은 영국과 일본의 양식이 혼합돼 있고, 영국식 화려함과 일본식 균형 잡힌 우아함의 결합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또 스크린인터내셔널도 “‘아가씨’는 기술의 승리다. 저택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어두운 타락의 힌트를 담아낸다”고 극찬했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을 알아줘 정말 기쁘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탐미주의 뒤에 숨으려 하는 변태 캐릭터의 타락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도예과 출신인 류 감독은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유학한 후 2001년 ‘꽃섬’으로 한국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괴물’ ‘변호인’ ‘국제시장’ ‘암살’ 등 ‘1000만 영화’를 비롯해 17편의 영화에서 미술을 맡았다. 박 감독과는 ‘올드보이’ 때 처음 만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 등 네 작품을 함께 했다. 그는 “영화에서 미술이 소모적인 일로 인식되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 일에 뛰어든 사람들이 중간에 그만두는 현실에 늘 마음이 아팠다”며 “이번 수상이 미술감독이라는 직업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후배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기사출처_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