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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더니…숨진 아들 가방에 컵라면 그대로

 

 

'지하철 정비원' 아버지 망연자실

 

작년 공고 재학 중 입사했지만
격무에 매일 녹초 돼 퇴근
공기업 직원 된다 희망에 열성
동생에 용돈 주고 출근했는데…
생일 하루 앞두고 허망하게 떠나


“죽고 난 뒤 가방을 열어보니까 컵라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아들이 일이 바빠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는데 결국 라면도 먹지 못하고 허망하게 갔네요.”

 

28일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승강장에 들어오는 전동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진 외주 정비업체 은성PSD 직원 김모(19)씨의 아버지(54)는 29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이 힘들게 일만 하다 사망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 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회사에 취직한 아들이 매일 녹초가 돼 퇴근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아들은 일이 너무 고되 최근엔 엘리베이터 관련 업종으로 진로를 바꿀까 고민도 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아들이 깔끔한 편인데 업무에 치여 씻지도 못하고 집에 오면 바로 곯아 떨어지곤 했다”며 “마침 오늘(29일)이 생일이라 태어난 날만이라도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길 원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아들이 지난해 서울의 한 공고에 재학 중 은성PSD에 입사했지만 공기업 직원이 된다는 희망에 격무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들은 지난 23일 비번임에도 서초구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협력업체 직원 전원을 자회사에 고용 승계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할 정도로 회사 일에 열성적이었다.

 

정비업무를 정규직이 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와 달리 서울메트로(1~4호선)는 외주업체가 담당하다 보니 숨진 김씨 아들처럼 인건비가 저렴한 미숙련 기술자들을 선호한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서울메트로 노조의 한 관계자는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인건비 때문에 실업계 고교를 막 졸업해 현업에 들어온 미숙련 기술자들을 많이 고용하곤 한다”며 “이번에 사고를 당한 김씨도 나이가 어린데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외주업체의 인력 부족 탓에 숨진 김씨는 격무에 시달리기도 했다.

 

김씨는 아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들려주며 끝내 울먹였다. “사고 당일 집을 나서기 전 월급 받았다며 남동생에게 용돈을 쥐어 줄 정도로 착한 아들이었어요. 며칠 전에는 밤늦게 집에 들어와 ‘아빠, 달걀 스크램블 해주세요’라고 해서 만들어줬더니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김씨의 빈소는 서울 건국대병원에 마련됐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ilbo.com
[기사출처_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