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너와 나와의 인연이다.
선연이든지 악연이든지 항시 서로가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인연을 맺는 것이다. 부모, 애인, 아내, 자식, 친척, 친구, 스승, 제자, 선후배, 이웃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곧 그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만남 중에서 진실한 만남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평생 몇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인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깊은 만남을 갖는 인연이 있다.
혼과혼, 마음과 마음, 생명과 생명, 인격과 인격이 서로 포용하는 깊은 만남이 중요하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만남은 큰 의미가 없다.
나와 부처님과의 만남은 깊은 만남이요, 도반과 은사스님과의 만남 또한 깊은 만남이다.
반면 길을 가다가 누가 방향을 묻는다든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주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식의 만남은 일시적인 만남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와 같은 일시적인 만남에 대해 너무나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를 들어 남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고, 몸매를 가꾸는 등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행위에 몰두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둘째로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인연이 있다.
서로 만남으로써 자신도 진실해지고 상대방도 진실해져 함께 빛과 힘을 얻는 경우이다.
이러한 만남 속에는 진솔한 감격이 있고,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서로를 증오하는 파괴적인 만남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옛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는 말도 있다.
이렇듯 상대방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인연이 많다면 얼마나 불행한 만남인가?
과연 내 주위에는 선한 인연이 많은가, 악한 인연이 많은가, 깊이 생각해 보고 선한 인연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셋째로는 행복한 인연이다.
퇴계와 율곡의 만남, 부처님과 가섭의 만남, 나와 부처님과의 만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괴테와 실러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 이러한 만남에는 영혼의 교류가 일어나고, 정신적인 충족감이 생기며, 종교의 혁명이 일어나고, 학문과 예술의 꽃이 핀다.
이것이 지극히 행복한 만남이다.
이러한 인연이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생의 차원을 더 높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넓은 광장에서 될 수 있으면 깊은 만남, 창조적인 만남, 행복한 만남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
"너와 나의 만남은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나의 운명에 큰 이로움을 주었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해도 나는 꼭 너와의 만남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
너는 전생에서 나의 아내였던가, 애인이었던가, 아들이었던가, 제자였던가, 친구였던가, 이처럼 깊은 만남,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가져야 한다.

만남 그리고 인연이란 말은 참으로 운치 있는 말이다.
너와 나와의 성실한 만남 속에서 인생의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성실한 내가 되고, 너 역시 성실한 네가 되어 성실한 너와 내가 성실한 자리에서 성실한 만남을 가질 때 우리의 만남은 정말 깊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만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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