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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맏딸 『엄마는 여전히』 호원숙 작가

 

호원숙(62) 경운박물관 운영위원은 고(故) 박완서(1931~2011) 작가의 맏딸이다.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은 수필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지난해 펴냈다. 생전에 왕성하게 활동한 다작가였던 박완서의 수많은 유작을 새롭게 엮고 묶어 출간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소설뿐 아니라 박완서의 산문을 모아놓은 『호미』, 대담을 엮은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호씨 덕분이다. 박완서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호씨는 어머니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와 박완서가 함께 살던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노란집’을 찾아 박 작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어머니 박완서 작가의 기록을 정리해 재출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난 원래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글을 정리하는 건 나의 사명이라 생각해 읽고 또 읽는다. 어머니의 글을 읽으면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글이라도 반복해서 보면 숨은그림찾기 하듯 새로운 퍼즐이 한 조각씩 나타난다. 나는 어머니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사람인데, 나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계속 눈에 띈다.”

 

-최근 발견한 새로움이라면.

 “올 1월에 출간된 대담집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을 정리하면서 어머니의 독립적인 정신, 가식 없는 성품을 다시금 느꼈다. 대담집에 이런 부분이 있다. 어머니가 이 집에서 뜰을 가꾸며 사는 걸 보고 ‘소박한 시골의 감수성을 지닌 작가’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거기에 향수를 갖고 있을 뿐, 속속들이 도시 사람이다. 뜰을 가꾸는 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병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솔직하고 분명한 태도, 자신에 대한 과대포장이나 환상을 경계하는 마음을 느꼈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에서 ‘엄마 박완서’를 ‘낯설고 멀다’고 묘사했다.

 “어머니가 ‘차가웠다’는 게 아니라 ‘어려웠다’는 의미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등단해 왕성하게 활동했다. 신문과 잡지에 연재도 많이 했다. 그런 어머니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우리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나와 동생 모두 어머니를 늘 존중하고 조심했다.”

 

- 어머니의 자녀 교육 방법은.

 “어떤 것도 강요한 적이 없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든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주 인용하던 말이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 구절이었다. 당신이 남에게 간섭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다 보니, 가장 가까운 자식에게도 그 원칙을 지켰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는 굉장히 자율적이었다. 나는 아직도 젓가락질을 못한다. 어머니는 ‘그거 좀 못하면 어떠냐’고 생각하셨던 거다.”

 

- 어머니로부터 받은 문학 수업은 없었나.

 “별다른 교육은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로 시작하는 변영로의 ‘봄비’라는 시를 읊어줬다. 소설을 옛날 이야기처럼 들려주기도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 일부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책 좀 읽어라’고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나와 동생들은 그 책을 찾아서 각자 방에 들어가 읽는 게 늘 우리 집의 풍경이었다.”

 

-딸의 입장에서 읽기 힘든 어머니의 글이 있나.

 “가족이다 보니 어머니의 글을 보면, 이 글을 쓸 당시 우리 가족이 처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어디서 살았는지, 어머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미망』을 한동안 못 읽었던 것도 이 글을 쓸 때의 상황이 떠올라서다. 당시 우리는 너무도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1988년 5월 박완서의 남편 호영진씨가 폐암으로, 3개월 뒤엔 장남 호원태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대작을 완성한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면.

 “자존감, 그리고 균형감각이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고, 넘치는 것을 싫어했다. 주변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작품에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거나 훈계하는 모습이 없다. 사람을 대할 때도 권력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강했고, 젊은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에게는 존댓말을 하며 존중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출판사 사장보다 나이 어린 편집자들과 친해져서 함께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호원숙이 추천하는 어머니 박완서의 작품 4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세계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대중적으로 굉장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 썼는데도 전작에 비해 덜 알려져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어머니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결혼식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하는 모습, 외할머니가 그날 빨래터에서 우는 장면이 가슴에 파고든다.

 

『미망 1, 2, 3』 세계사

구한말 격동기에 개성상인 전처만이 시대의 변화를 꿰뚫고 자신의 손녀딸을 강한 여성으로 키워낸다. 집안에 엄청난 슬픔이 덮쳤던 때였는데 어머니가 그 아픔을 이겨내고 완성한 작품이다. 개성 출신인 어머니가 개성 상인을 통해 신문물과 부에 대한 가치관을 풀어냈다. 시대상에 대한 묘사는 물론 등장인물의 삶 하나하나 허투루 설정된 것이 없다. 거듭 읽을수록 대작임을 느낀다.

 

『그 남자네 집』 현대문학

단편소설로 썼던 것을 장편으로 다시 쓴 작품이다. 어머니가 쓴 마지막 장편 소설이기도 하다. 전쟁 중의 첫사랑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실상은 우리 민족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냈는가, 우리에게 미국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묵직한 주제 의식을 담담한 필체로 담아내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어머니가 전쟁을 배경으로 쓴 소설 중에 자전적인 내용이 많은데, 이 작품은 완전한 픽션이다.

 

『대범한 밥상』문학동네

기존에 출간 했던 중단편 중 대표작만 발표 순서대로 다시 엮은 소설집이다. 여러 편의 단편이 있지만 이것만이라도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들을 모았다. 이 책에 수록된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은 출간되자마자 영어·프랑스어로 번역됐다. ‘엄마의 말뚝’ ‘너무도 쓸쓸한 당신’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등 여기 실린 작품을 읽다 보면 분명 우리 가족의 일상에서 끄집어낸 이야기인데도 각각의 시대상을 반영한 주제 의식이 명쾌하다.

 

 

 

 

 

 

 

박형수 기자(글) hspark97@joongang.co.kr
김경록 기자(사진) kimkr8486@joongang.co.kr
[기사/사진출처_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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