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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 죄를 묻다?


뇌물, 직권남용, 비밀누설… 끊임없이 드러나는 범죄 혐의에도 법무부·검찰은
“대통령은 수사 대상 아니다”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범죄를 은폐할 힘과 수단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사는 빠를수록 좋다. 한국헌법학회 회장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저서 <헌법학원론>에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 제84조다.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은 내란과 외환에 견줄 만한 참담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최순실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란 혹은 외환죄를 묻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으로 임기 중에 처벌받지 않는다. 물론 임기를 마친 뒤에는 처벌이 가능하다. 


임기 중 수사, 퇴임 뒤 처벌 가능해 
문제는 수사다. 헌법 제84조에서 규정하는 ‘형사상의 소추’는 기소를 의미한다. 기소는 검찰이 피의자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재판에 넘기는 절차다. 수사는 기소 전 단계에서 이뤄진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련의 과정이다. 따라서 헌법 조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대통령은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발 벗고 나섰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0월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 회의에 나와 “(대통령은) 수사 대상도 되지 않는 게 다수설”이라고 밝혔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도 같은 날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되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헌법을 핑계 삼아 수사 의지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당사자인 박 대통령마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하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정작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만 이번 사태의 위중함을 모르고 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거 없는 의혹만 가지고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법해석을 들이대면서 수사를 못한다고 밝히는 것은 대한민국 검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헌법 제65조에는 대통령 등 공무원이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할 때에는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수사 없이는 대통령이 법률을 위배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조항만 보더라도 대통령 수사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은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 뒤에서 국정을 사실상 조정하고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제외하고 조사하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드러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변호사회도 10월27일 보도자료를 내 “헌법 제84조에 의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지만 이는 재직 중 대통령이 기소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제84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뇌물죄·직권남용·비밀누설 등 적용 가능 
헌법 해석 문제와 무관하게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도 박 대통령 수사는 필수적이다. 최순실씨와 더불어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주범’이자 핵심 수사 대상이다. 최씨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됐으며,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최씨를 위해 위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시한 사람을 두고 지시받은 사람들만 조사해서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사의 실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 것은 재직 중일 때다. 임기가 끝난 뒤에는 수사는 물론 재판도 받을 수 있다. 내란과 외환을 제외한 죄는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를 마치고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퇴임 뒤까지 기소를 미루면 된다. 

특히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범죄를 은폐할 힘과 수단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사는 빠를수록 좋다. 한국헌법학회 회장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저서 <헌법학원론>에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적었다. 

재직 중 수사와 퇴임 뒤 처벌이 가능하다면 남는 것은 어떤 혐의를 적용하느냐다. 우선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등과 관련해서는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타인에게 금품을 제공하도록 하는 경우 적용된다. 

대표적 사례가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건이다. 대법원은 SK그룹 쪽에 압력을 넣어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원을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위원장에게 제3자 뇌물죄를 물어 2006년 6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씨가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포스코의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지인이 운영하는 3개 업체에 26억원가량 일감을 제공하도록 한 혐의로 2015년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비서관도 범죄 혐의 물어야 
한 검찰 간부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 역시 제3자 뇌물죄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두 재단이 대기업으로부터 모금한 액수는 800억원에 달한다. 박 대통령이 두 재단의 ‘실제 주인’으로 의심받는 최씨를 위해 대기업이 기부하도록 했다면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쟁점은 대가성 입증이다. 법원은 뇌물죄 적용에서 어떤 구체적인 대가를 바탕으로 금품이 오갔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같이 최고권력자의 경우는 다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수뢰 사건의 판결에서 “(대통령은)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서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대통령에 대한 금원 공여의 취지가 기업 경영과 관련된 경제정책 등을 결정·집행하고 금융 세제 등을 운용함에 있어서 우대를 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하여달라거나 국책사업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달라는 데에 있었던 것인 이상 그것만으로도 앞서 본 대통령의 직무와 그 금원의 공여가 대가 관계에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같이 여러 직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에게 금품을 주는 것은 특정 이권이나 편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논리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1억원 이상 뇌물죄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박 대통령에게는 ‘직권남용·권리 행사 방해’ 혐의도 적용이 가능하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과 관련해 정당한 한계를 넘어서 타인에게 의무 없는 행위를 하게 할 경우 적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직무와 무관한 업무에 대해서는 직권남용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 ‘직무와 무관한 업무’라고 볼 수 있는 사안이 없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측근인 최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재단에 돈을 낼 것을 요구했다면 직권남용죄 적용이 가능하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재벌 회장을 청와대 관저로 불러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사업계획서를 보이며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박 대통령이 재단 출연금 조성에 깊숙이 관련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제3자 뇌물수수 혐의와 직권남용 혐의는 기업들을 상대로 두 재단에 출연금을 내라고 종용한 정황이 속속 드러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도 함께 물을 수 있다. 


최씨에겐 횡령·업무방해 등 적용될 듯 
최씨에게 각종 청와대 내부 자료가 전달된 것과 관련해서는 박 대통령에게 공무상 비밀 누설, 군사 기밀 누설, 외교상 기밀 누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 등을 물을 수 있다. JTBC가 공개한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는 ‘2012년 군 당국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세 차례 비밀 군사접촉을 했다’는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과 ‘호주 총리 통화 참고자료’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등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외교 관련 문서가 포함돼 있다. 

또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매일 최씨에게 30cm 두께의 청와대 보고문서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군사·외교 기밀을 포함한 청와대 내부 문서를 민간인인 최씨에게 전달하는 데 개입했다면 각종 기밀 누설 혐의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정호성 비서관 등 최씨에게 청와대 문서를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들도 수사 대상에 오른다.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역할을 한 최씨에게 주되게 물을 수 있는 범죄 혐의는 횡령이다. 최씨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더블루K’나 독일의 ‘비덱’ 등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에 자금을 제공하게 하고 이 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면 횡령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조세포탈이나 외환거래법 위반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높다. 

최씨가 정부나 기업의 인사와 정책 등에 개입했다면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 혐의도 물을 수 있다. 최씨는 비선 모임에서 장관 인사를 좌지우지했으며 자신에게 도움을 준 대한항공과 KEB하나은행 임원을 승진시키거나 좋은 자리로 갈 수 있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최씨가 기업을 협박해 재단 출연금이나 투자 등을 받았다면 강요죄나 공갈죄도 적용할 수 있다. 최씨의 범죄 혐의는 수사에 따라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씨에게 뇌물죄의 공범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 뇌물죄는 금품을 받는 사람이 공무원 신분을 가졌을 때만 적용되는 ‘신분 범죄’다. 최씨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뇌물을 받은 혐의를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형법 제33조는 “신분관계로 인하여 성립될 범죄에 가공(남의 범죄에 편의를 주는 것)한 행위는 신분관계가 없는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10월2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향후 수사 과제와 수사촉구사항 의견서’(의견서)를 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의 설립 및 모금 과정에 깊이 개입한 안종범(청와대 수석), 이승철(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최순실 등은 재벌기업들로부터 금품을 받기로 공모”하였다며 “안종범, 이승철, 최순실 등에 대하여 형법 제129조 제1항 뇌물수뢰죄의 공모공동정범에 해당한다는 혐의가 있다고 사료”된다고 밝혔다. 

민변은 의견서에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돈을 출연한 기업에도 ‘뇌물 공여’ 혐의와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수사 의지 없는 검찰 
박 대통령과 최씨를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전경련 관계자, 기업 등에 물을 수 있는 범죄 혐의는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수사기관의 의지다. 

검찰은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가 9월29일 최씨 등을 고발한 뒤에도 한동안 본격적인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고발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10월26일 첫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늑장 수사로 일관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구성은 여야가 특검 구성을 하는 데 의견을 모은 다음날인 10월27일에야 이뤄졌다. 게다가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주요하게 조사해야 할 박 대통령이 아예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례없는 국정 농단의 실체를 밝히는 일을 특검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기사출처_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