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앞에 앉으면 "

- 도종환 시인


나의 마음이 어지러운 물살로 흔들릴 때
당신은 나를 불러주십니다.
당신이 정녕 어디에 있을까 찾아 헤맬 때
당신은 나를 가까이 오라 부르십니다.
억새풀 하나 당신 앞에 옮겨 놓고 오랜 날 지나 있어도
빗줄기를 불러모아 그 억새풀과 함께 얼어붙으며
당신께 드린 것은 풀 하나 버리지 않는
그 속에 당신 마음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겨울 하늘 붉은 노을로 내려와
이것이 아직도 타고 있는 당신 마음임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당신 가까이 마주 와 앉아야
비로소 솔바람소리로 가만가만 제게 오시고
못 보던 새 한 마리 가까이 있게 하여
당신의 소리를 알려주십니다.
당신 앞에 앉으면 온갖 어지러운 유혹과 사치스런 삶들이
한낱 짧은 연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시고
저렇게 다 버리고도 죽지 않은 겨울나무 속에서
홀로 가는 길 서러우나 외롭지 않음을 깨우치십니다.
슬픔 하나가 마음을 얼마나 깨끗이 닦아내는지
알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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